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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ketball story/Go, Officiales

코트 위의 포청천, 심판 그리고 오심

다양한 종류의 오심들
오심의 종류는 다양하다. 특히 터치아웃이나 골텐딩 같은 순간적인 판단력이 요구되는 것들이 많다. 이런 상황은 카메라로 리플레이 될 때 구분될 뿐 코트위에서 육안으로 판정하기 힘들 때도 있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잘못된 규정을 적용하는 일은 곤란하다. 
 
지난 시즌 서울 SK는 서울 삼성과의 1차전에서 ‘어웨이 파울’(4쿼터나 연장 종료 2분 이내에 드로우 인 전 수비 팀의 개인 파울 또는 볼과 상관없는 지역에서의 파울)을 인정받지 못한 끝에 억울하게 버저비터를 내주며 패했다. 이후 SK는 매 라운드마다 버저비터를 얻어맞는 불운에 시달렸다. 
 
1999-00시즌, 현대(현 KCC)와 SBS의 경기. 현대는 종료 16초를 남긴 상황에서 3점 뒤진 채 마지막 수비를 하고 있었다. 드로우 인 직전 조니 맥도웰이 엔드라인 밖까지 나가 수비를 했다. 이 경우, 경기 지연에 해당한다. 경기 지연은 첫 번째는 경고, 두 번째부터 자유투 1개와 공격권이 주어진다. 그런데 현대의 첫 번째 경기 지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SBS에게 자유투를 선언했다. 이 자유투로 4점을 뒤진 현대는 연장전 갈 기회 자체를 아예 놓쳤다. 이 두 가지 상황은 자유투를 주지 않아야 하거나 줘야 하는 상황을 잘못 적용한 경우다. 
 
이뿐만 아니라 자유투 슈터를 잘못 지정하는 경우도 잦았다. 자유투 파울 이후 테크니컬 파울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테크니컬 파울에 대한 자유투는 5명 가운데 누구든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파울에 대한 자유투는 반칙을 당한 선수가 던지는 것이 맞다. 이를 헷갈려하는 심판이 몇몇 있었다. 
 
이런 건 애교에 속한다. 프로농구 원년에는 심판들이 우왕좌왕했다. 농구대잔치 시절만 해도 2심제였으나 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3심제로 바뀌었다. 경기 규칙도 24초 룰과 지역방어 제한 등 숙지할 것들이 많았다. 경기 중 휘슬을 불어놓고도 그대로 경기 진행하는가 하면, 엉뚱한 선수에게 5번째 파울을 적용하기도 했고 6명이 코트에 들어선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작전타임을 다 소진했음에도 또 허용해 경기 흐름을 바꿔놓는 일도 몇 차례 있었다. 작전타임이 없는 상황에서 타임아웃을 또 요청하면 이는 명백히 테크니컬 파울이다. 
  
한 감독의 참회록과 심판위원장의 결의문 
프로농구 초창기에 이런 말들이 오갔다. “오심을 하면 다음 경기서 ‘보상판정’ 을 한다.” “불리한 판정을 얌전히 받아들이는 감독은 바보다.” 이는 프로농구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보상 판정에 대한 소문이자 조롱이다. 심판의 능력이 최근 들어 많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KBL은 아직까지 보상 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감독들은 KBL 심판들의 휘슬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1998-99시즌 막판 한 감독은 언론을 통해 ‘참회록’ 을 발표하기도 했다. “감독들의 거친 항의와 판정에 수긍하지 않는 선수들, 여기에 끊이지 않는 휘슬” 을 지적하고 “이로 인해 프로농구가 팬들의 외면을 받지 않도록 자성하자” 는 내용이었다. 참회록을 본 감독들은 이에 동감하면서도 심판들의 반성도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고 백남정 심판위원장은 결의문으로 화답했다. “모호하고 일관성 없는 심판 판정이 거친 항의의 원인이었다” 고 인정한 뒤 “부족한 자질과 경험을 메우기 위해 분석과 토론에 더욱 힘을 쓰겠다” 고 노력을 다짐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참회록을 발표한 감독이 1998-99시즌을 마친 후 계약종료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는 것이다. 그 후 KBL의 2대 심판위원장이 되었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감독으로 복귀하긴 했지만 상당히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1999-00시즌부터 심판 부장을 역임하며 직접 휘슬까지 불었던 제시 톰슨 심판

 

지금은 없어진 객원심판

지난해 대학농구리그가 출범했다. 하지만 개막전부터 심판 때문에 논란이 일었다. 대한농구협회가 대학농구연맹에서 고용한 심판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 일부 심판은 대학농구협회 소속일 때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인물들이었다. 대학농구연맹이 대한농구협회 소속 심판들의 능력과 청렴도를 확신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였다.

 

지금도 이럴진대 프로농구 출범 당시에는 어땠을까? KBL은 가능한 대한농구협회 소속 심판을 배제한 채 처우를 대폭 개선해 심판을 모집했다. 전임심판의 경우 대한농구협회의 두 배 이상 연봉을 보장했다. 객원 심판은 1경기당 10만 원 이상의 수당을 지급했다. 당시 대한농구협회 소속 심판의 한 경기 수당은 1만 원 안팎이었다. 국가대표 출신과 국가대표 코치를 역임했던 원로들도 공정하고 깨끗한 판정을 위해 KBL 심판으로 나섰다.

 

KBL의 애초의 심판 구성 계획은 전임 15명, 객원 25명으로 모두 40명이었다. 실제론 전임 10명 객원 27명으로 운영했다. 원년의 전임심판 중 지금까지 휘슬을 불고 있는 심판은 한규돈, 이해건, 황순팔, 강민호, 장준혁까지 총 5명이다. 객원 심판은 주로 프로농구 연고지에 거주하는 심판들이었다. 지방 심판을 육성하기 위해 연고지 홈경기에 객원 심판 1명씩을 배정한 것. 그런데 이 객원 심판들의 판정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 특히 홈 어드벤티지를 의식한 판정이 많았다. 1997시즌이 시작한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객원 심판들은 연고지 경기에서 배제되었다.

 

KBL 코트에 4명의 외국인 심판이 휘슬을 분 적이 있다. 1998-99시즌부터 심판부장을 역임한 제시 톰슨은 두 시즌 동안 직접 코트에 나섰다. 게리 알렉스(1999-01시즌), 로버트 낱(2000-01시즌)에 이어 리엘 바나리아(2007-08시즌)도 KBL 객원 심판으로 활약한 바 있다.

 

심판들의 애환

심판은 “잘하면 본전이고 잘못하면 죽일 놈”이다. 완전한 신뢰를 주지 못하는 탓에 욕먹을 일이 잦다. 그럼에도 청렴도에 있어서는 인정을 받고 있다. KBL이 심판과 관련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구석이다. 프로농구 원년에는 심판의 은행 통장에 돈을 입금한 뒤 신고 여부를 확인했다. 이런 점검은 1999-00시즌 플레이오프까지도 이뤄졌다.

 

기아 감독을 역임 중일 때 최인선 감독은 “예전과 달리 금품수수 따위로 잡음을 일으키는 심판이 없는 것만도 다행이 아닌가?”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심판들은 지인들에게 가족 대소사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다. 혹 친분이 있는 구단 관계자가 찾으면 어김없이 심판위원장에게 보고한다. 집이 연고지에 있어도 경기 후에는 찾아가보지도 못한다.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다.

 

최근의 일이다. 한 심판이 지인의 부탁으로 구단에 입장권 3장을 부탁했다. 구단 관계자가 입장권을 봉투에 담아서 전달했다. 이것이 눈에 띄어 “돈을 받았다” 는 오해를 산적이 있다. 심판들은 이 일 이후, 구단에서 제공하는 식권도 받지 않고 빵을 비롯한 구단 제공 음식을 일체 먹지 않는다. 심판실에 있는 음료수와 간단한 과자 정도만 먹을 수 있다. 한 심판은 얼마 전, 한 구단을 통해 제품을 싸게 구매했다가 출전 정지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심판도 엄연히 농구 가족이지만 농구인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등 제약이 상당히 많다.

 

최초의 연임 박광호 심판위원장

프로농구 출범 이후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이는 다름 아닌 심판이다. 그들의 수장인 심판위원장은 외부로부터 압력을 막으랴, 심판들을 교육하랴 하루하루가 바쁘다. 구단은 판정에서 피해라도 보면 심판위원장의 계약기간이 끝날 때 되갚아주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래서 심판위원장은 연임을 못하는 자리였다.

 

박광호 경기위원장이 2008-09시즌에 8번째 심판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심판위원장의 임기는 2년. 박 위원장은 역대 처음으로 3년째 심판의 수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판정에 대한 부족한 지식은 4대 심판위원장을 지낸 김동규 심판교육관으로 채웠다.

 

박 위원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체력이다. 심판들도 선수들처럼 전지훈련을 실시한다. 비시즌은 물론, 시즌 중 경기에 배정을 받지 않은 심판들은 오후에 체육관에서 훈련을 가진다. 그 이전에는 오전에 배정된 이론 교육 이후, 점심 때 곁들인 반주로 취해 있는 심판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 체력 향상과 더불어 구단의 입김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도 박 위원장의 장점으로 꼽힌다. 감독 출신이란 강점이 작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