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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단 기사 모음/스포츠둥지기자단 7기

체육선생님의 말 한마디, 인생을 바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응, 그래 세훈이 왔구나. 이야 살이 많이 빠졌구나? 잘 지냈니?” 5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체육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신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1년도 빠짐없이 체육선생님을 찾아뵙고 있다. 군복무시절에는 휴가를 나와서 찾아뵀었다.

 

내가 다닌 양천구 소재의 고등학교는 굉장히 입시교육이 강했다. 양천구의 특산품은 ‘학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단순히 국·영·수 중심의 학원을 넘어 예체능과 특목고 입시 등 학원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곳이 목동 학원가였다. 외국어·학원 수가 1000개 정도였다. 양천구 목동이 강남구 대치동과 함께 ‘사교육 천국’이라고 불리는 이유였다. 입시 교육이라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 있었다.

 

그만큼 학교생활도 남달랐다. 수업이 끝난 후 ‘야자’하고 숙제하고 바로 학원을 갔다. 학원을 갔다 온 후 다시 학교로 가 ‘야자’를 했다. 고1 때는 시험을 보고 영어, 수학을 상·중·하 반으로 학생들을 나눠 수업을 진행했다. 고3 때는 전교 1등부터 차례대로 몇십 명씩 따로 뽑아 ‘청운학사’라는 특별반을 만들어 방과 후 자습실을 따로 운영했다. 공부 못 하는 학생과 잘하는 학생을 확실히 구분했다. 그만큼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대하는 태도도 달랐다. 고2 때 몇몇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철저히 숫자로 평가했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문제가 어려워 선생님에게 질문하러 나갔는데 선생님이 짜증을 내 굉장히 상처를 입었었다. 일류 K대를 졸업한 수학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면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했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엄마들끼리는 반 모임을 만들어 학원이나 입시 정보를 공유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서로 몰려다니고 점수가 좀 안 나오는 친구는 대놓고는 아니지만 은근히 돌려 무시하기도 했다.

 

나는 공부를 잘 못 했기에 입시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다. 하루하루 성적 고민에 불안감으로 가득 차 불면증까지 왔었다. 성격까지 내성적이고 소심해져 수업시간에 화장실 간다고 말도 못 했다. 우리 엄마는 당연히 반 모임이 있는 지도 몰랐다. 학원을 다닐려고 영어학원을 갔는데 그 학원은 성적이 1등급 아니면 안 받는다는 말을 듣고 정말 우울했었다. 학원도 학생들을 가려 받았다. 입시 스트레스는 최고 절정기인 고3 때 극에 달했다. 학원도 다니고 남들 푸는 문제집도 다 풀며 공부를 했지만 모의고사 성적은 점차 오르지 않았다. 몹시 가슴이 답답했고 마음고생이 심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몰랐다.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해 친구들하고 많이 싸우기도 했다. 그런 수험생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던 건 체육시간 10분 전 축구화 끈을 매고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을 나갈 때였다. 축구를 하는 순간만큼은 입시 스트레스가 싹 사라졌다. 50분 체육시간이 5초처럼 지나갔고 체육시간에 마시는 공기는 너무나 상쾌했다. ‘야자’ 석식시간 후 15분 동안의 풋살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수험시절 축구는 나에게 스킨스쿠버의 산소탱크 같은 존재였다.

 

축구뿐만 아니라 운동을 아주 좋아했기에 체육대학에 가고 싶었다. 고1 때부터 고2 때 같이 축구하는 친구들이 체대입시학원을 다녔는데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고3 이 되니 생각이 달라졌다. 체육대학을 막연히 가고 싶었지, 어떻게 준비해야되는지 아예 몰랐다. 무슨 실기조차 있는지도 몰랐다. 그때가 5월 초 였는데 수능까지 6개월밖에 안 남은 시간이었고 체대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고2 때부터 다녀 굉장히 초조하고 불안했었다. 체대입시학원에 다닌 친구들과는 별로 친하지가 않았다. 내 곁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하루하루 자기 전 “어떡하지? 어떡하지?” 수없이 고민하며 밤잠을 설쳤다.


그때 내 손을 잡아주었던 건 체육선생님이였다. 용기를 내 생활지도부실 문을 두드려 체육선생님께 찾아갔다. 체육선생님은 질문해도 대충대충 대답해주는 다른 선생님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공부를 잘 못 했던 나를 다독이며 체육대학입시의 흐름과 정보를 자세히 알려주시고 학원을 다니라고 조언해주셨다. 체대입시가 아주 자세히 소개돼있는 네이버 카페도 소개해주셨다. 그제야 체대입시 실기는 대부분 학생들이 1년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너무 늦은 건 아닌가 불안했지만 선생님은 아직 늦지 않았고 너는 운동에 소질이 있으니 시작해보라고 용기를 주셨다. 선생님의 이 말 한마디에 나는 그날 바로 부모님께 진로를 말씀드리고 학원에 등록해 운동을 시작했다. 공부는 해도 해도 성적이 잘 안 오른 것과 달리 운동은 하면 할수록 기록이 올라갔다. 방과 후 일주일에 3번씩 학원에서 운동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선생님을 떠올리며 더욱 악착같이 운동했다. 그 결과 대학입시에서 실기 전 종목에서 최고점을 받으며 치열한 입시전쟁 끝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체대 군기가 세고, 교수님의 수업도 별로 흥미를 못 느꼈다. 교수님을 찾아뵙고 싶었지만 바쁘셔서 만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학교는 멀기만 했다. 그때가 우연히 스승의 날이었다. 체육선생님에게 고3 때의 감사인사를 드리러 찾아갔는데 선생님은 나보다 적극적으로 진로를 고민해주셨다. 남자라면 이왕 가는 군대를 빨리 가는 것도 좋겠다고 조언도 해주셨다. 부모님과 상의를 한 결과,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바로 2달 뒤 입대해 작전행정병으로 군 복무를 성실히 했다. 말년휴가를 길게 나와 3월 중순 학교 복학해 휴가 기간 동안 수업을 들었다. 다음 학기에 복학을 안 해도 돼 6개월의 시간을 벌었다. 그 후 현재 체육선생님의 꿈을 꾸면서 11곳의 초, 중, 고등학교에서 여러 스포츠 종목을 가르쳤고, 현재 강월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으로 농구와 티볼을 가르치고 있다.


오늘날의 선생님과 학생은 지식이나 기술을 팔고 사는 공급자와 수요자처럼 되고 말았다.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 원만한 인격자가 되도록 가르치는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는 사라지고 만 것 같다. 교육은 교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학생은 끊임없이 배운다. 학생은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인품이며 정신이며 삶의 자세를 닮아간다. 세상이 각박해지다 보니 선생님 한 번 만나 뵙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공부를 잘 못 해 고민하며 불안해 하는 현재 고등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쭙잖은 인터넷에 “어떻게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 글을 올리지 말라고. 또 그냥 불안한 이유만으로 옆에 있는 친구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앞에 있는 선생님에게 찾아갔으면 한다. 선생님은 교육자다. 사범대학에 그 힘든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오랫동안 학교에서 전공인 과목을 가르치는 교육자다. 어떠한 인터넷 지식인보다 뛰어나고 어떠한 스타 학원강사보다 배울 것이 많다. 먼저 찾아와 인사하고 안부를 전하며 고민을 털어놓는 학생을 내쫓을 선생님들은 없다.

 

훗날 나도 잘하는 게 없으니 안된다고 할 게 아니라 무엇을 잘하는지 찾아주는 스승, 누군가가 나로 인해 힘을 얻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선생님의 별것 아닌 위로가 한 학생에게는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계실까.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실명을 밝힌다. 선유고등학교 강성률 선생님,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출처: http://www.sportnest.kr/2453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