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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단 기사 모음/스포츠둥지기자단 7기

실패로 끝난 첫 사랑의 축구공



이슬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이달 초 밤, 귀갓 길에 마을버스를 탔다. 두 정거장을 지나가니 고 1때 같은 반이던 친구가 버스에 탑승했다. 학교 때 축구를 잘 해 ‘호날두’로 불렸던 애였다. 요즘 안부를 물으니, “나 축구지도자 자격증 땄어”라고 대답했다. 친구는 축구와 이미 가깝게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내가 다녔던 서울 신목고는 한 학년 전체 14개 반이 있었다. 고1 기말고사가 끝나고 학교에서 학년별 반 대항으로 축구대회가 열렸다. 남학생들은 체육 시간에 무조건 축구를 하고 점심시간에도 나와 반끼리 축구를 했다. 쉬는 시간에는 EPL(프리미어리그) 영상을 보고 이야기를 꽃피웠다. 심지어 방과 후에도 축구경기를 했다. 일부 학생은 ‘인터밀란’유니폼을 맞춰입을 정도로 열성이었다. 학생 대부분이 축구화를 학교 사물함에 넣고 지냈다. 그만큼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고 모든 반들이 거의 다 그랬다. 1년에 1번뿐인 축구대회는 신목고의 축제이자 반끼리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반끼리 대항인지라 학생들끼리는 물론, 담임선생님들 간의 신경전도 펼쳐 졌다. 체육 시간에 반끼리 경기를 하면 각 반 여자아이들의 응원도 대단했다.


축구에 소질이 있었던 친구가 있었던 우리 반은 우승후보였다. ‘빅 4’의 반 중 하나였다. 목표는 우승이었다. 하지만 남학생 22명 중 11명에 들어가는게 문제였다. 잘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명단을 친구가 짰는데, 체육 시간과 방과 후 경기 때 골이나 어시스트를 해 눈에 띄어야 했다.


11명에 들고 싶은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짝사랑. 2009년 3월 입학식 날, 각 반마다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됐다. 처음 그녀를 본 순간 첫 눈에 반하고 말았다. 굉장히 내성적이어서 여자 친구들을 보면 말 자체를 잘 못 걸었으나 큰 용기를 내어 그녀의 번호를 얻어 문자를 자주 했다.


학원을 갔다 온 후 그녀와 만났다. 동네 아파트 앞에 있는 의자에 같이 앉았다. 그녀는 모의고사 점수가 잘 안나와 힘들어 하고 있었다. 눈 앞에 내리는 빗망울은 그녀의 눈물같이 보였다.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니 어느 새 밤이 깊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로 금방 흘러 갔다.



그녀는 박보검이라는 친구를 좋아하는 눈치였다(그는 응답하라 1998에 나왔었던 배우 박보검이다. 필자와 박보검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고백을 할 기회가 생겼다. 바로 축구대회에 나가 골 세레머니로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대표 축구 커뮤니티 누리집 ‘I LOVE SOCCER’에 질문글을 올렸다. “이번 축구대회에서 짝사랑에게 골 세레머니로 고백을 할 건데 어떤 게 좋을까요?” 얼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았다. “꽃을 준비해서 골 넣을 때 전달하세요!” “멋있게 포옹 한번 하세요” “일단 골부터 넣고 생각하세요.” 대부분 댓글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소녀시대의 ‘Hoot’이란 노래가 생각났다. 당시 화살을 쏘는 안무가 인기였다. “아! 이거다!” 친구한테 말해 인간 하트를 만든 다음 내가 그녀에게 화살로 쏘기로 했다. 그 후 축구공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기로 했다. 문제는 다음 어떤 말을 할까였다.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공책에 쓰고 지우는 반복 끝에 결정했다. “이 축구공에는 내 마음이 담겼어. 이걸 받아준다면 내 모든 걸 가져간 거야. 내 마음을 받아주겠니?”


문제는 11명 안에 드는 것이었다. 선발에 들지 못하면 골 세레머니는 무용지물이었다. 집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호날두 플레이를 돌려봤다. 영상을 보면서 가상의 공을 내 다리 앞에 만들어 헛다리를 연습했다. 허벅지가 쥐가 나기 시작했다. 혼자 크게 외쳤다. “호날두가 축구를 이렇게 잘할 줄이야!” 하지만 그녀 생각에 다리를 다시 돌렸다. 연습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이날 잘하면 친구의 눈에 띄어 축구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학원에 갔다 와서 침대에 누웠다. 골 넣는 장면을 상상하며 꿈나라에 빠졌다.


연습경기에 골을 넣고 드디어 11명에 뽑혀 반 대표로 축구대회에 나가게 됐다. 짝사랑하는 그녀가 열심히 응원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힘이 생겼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골 세레머니만 생각한 나머지 준비운동을 안하고 경기에 들어갔다. 무릎이 올라가지 않았다. 숨은 턱턱 막혀왔다. 축구 잘 하는 친구는 상대 수비 4명의 전담마크로 힘을 못썼다. 결국 우리 반은 예선탈락을 하고 말았다. 짝사랑하던 그녀에게의 고백도 하늘 멀리 날아갔다.


바로 겨울방학이 시작 돼 그녀에게 따로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다. 이대로 그녀를 방학으로 보내기엔 무척이나 아쉬웠다. 경기 후 집으로 가면서 용기를 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20초가 지났을까. 신호음이 계속 멈추지 않는다. 목이 빠지도록 기다린다. 드디어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 퀵 보이스로 연결하오니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축구를 보면 항상 그 여학생이 생각난다. 아직도 짝사랑의 꿈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출처: http://www.sportnest.kr/2429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