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sketball story/KBL 심판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해야 잘 할 수 있다” 여자 중학생 농구선수 엄마의 일기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해야 잘 할 수 있다여자 중학생 농구선수 엄마의 일기

41회 협회장기 전국남녀중고농구대회 숭의여중 대 선일여중 결승전서 선일여중을 응원하고 있는 학부모들

 

-본 글은 현재 선일여자중학교 3학년 농구부인 최민서 선수 어머니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필자와 3년 전부터 연락을 주고 받는 분입니다. 운동을 하는 자식을 둔 부모의 불안한 마음과 미래에 대한 생각 등이 잘 느껴집니다. 농구선수를 자식으로 둔 부모님들과 농구를 시키려고 생각 중인 부모님들께 도움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여기는 강원도 양구이다. 농구대회는 거의 지방에서 개최된다. 민서 덕분인지(?) 전국 곳곳 안 가본 데가 없다. 작년에는 경남 사천, 경북 상주, 광주, 강원도 양구, 학생체육관, 전남 영광, 올해는 사천을 갔다 왔다. 지금은 강원도 양구에서 제41회 협회장기 전국남녀중고농구대회를 하고 있다. 농구대회뿐만 아니라 모든 대회가 지방에서 열려서 부모들은 동행하기 어려움이 많다. 또한, 대회도 하루, 이틀이 아닌 일주일간 열려 일을 하는 부모로서는 힘들다. 작년 6월부터 주말리그가 열려 매주 토, 일 경기를 근교에서 하다 보니 조금은 여유롭기는 하나, 아이들이 쉴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대회에 와서 부모들의 할 일은 아이들이 좋은 몸 상태로 게임을 뛸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 주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와 달리, 중학생이 된 지금은 별로 챙겨줄 일이 없어서 조금은 편해지고 있다.

선일여중은 1차 결선과 준결승에 승리하면서 파죽지세로 대망의 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강호 숭의여중. 코트에 들어가기 전 민서에게 다치지 말고 집중해서 파이팅!”라고 말하니, 아이도 파이팅!“하고 들어갔다. 심판이 경기 시작을 알리는 점프볼을 올린다. 경기는 숭의여중으로 유리하게 흘러갔고 31-23, 숭의여중의 리드로 4쿼터가 시작됐다.

 

민서의 어린 모습이 떠오른다. 민서는 6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했다. 혹여나 나중에 물에 빠졌을 경우 누가 구하러 왔을 때 물에 떠 있으라고시켰다. 그로 인하여 수영 선수로의 길로 들어섰고 초등학교 입학을 수영부가 있는 홍제초(서대문구 소재)에 진학했다. 그러다 집이 대조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2학년 때 대조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대조초 체육부장님은 민서가 운동부 생활을 한 것을 알고 감사하게도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주관하는 체육영재 센터에 원서를 내보라고 권유하셨다. 그런 사업은 처음 들어봐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선수 대상으로, 우수한 체육영재를 조기에 선발하여 세계적인 기량을 가진 운동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운이 좋게 민서가 뽑혔고 당해 12월부터 2월까지 2개월 동안 무료로 교육을 받았다. 200912학년 때 서울대학교에서 육상, 201023학년 때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수영을 전공으로 하고 여러 가지 이론과 실기를 배웠다. 민서는 지하철, 버스를 타고 가는 번거로움 속에서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배웠으며 재미도 있어했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러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척 즐거워 보였다.

 

대조초에는 운동부가 없었지만 교육감배 , 마스터스 수영대회에 출전해 메달도 땄다. , 방학 때는 수영 연습시간이 오후여서 서부교육청 방학 특강으로 운동부가 있는 학교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했다. 방학 때 선일초등학교, 녹번초등학교에서 농구, 육상을 운영했는데 직접 아이를 데리고 수업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두 학교 코치 선생님이 민서가 육상부와 농구부에 들어오기를 권유하셨지만 수영을 계속 하고 있었기에 사양했다. 1년 후, 끊임없는 선일초 농구부 코치의 권유가 있었다. 민서는 농구를 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기에 승낙했다. 민서는 선일초등학교로 전학을 가 농구를 시작하게 됐다.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인 200411월 처음으로 농구부에 들어갔다.

 

처음에 농구를 시켰을 때는 걱정도 되고 여러 가지가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민서가 좋아해 안도할 수 있었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영을 한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수영하면서 배웠던 것들이 농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렇게 탈 없이 선일여자중학교에 진학했다. 키도 172cm로 컸다. 운동시간은 방과 후 월,,,,,토 매일 2시간씩이었다. 매일 운동을 하고 온 딸과 저녁을 먹으면서 힘들진 않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였다. 아침 715분부터 8시까지 하는 새벽운동은 자율이었는데 대회가 있는 날이면 민서는 아침 6시에 무섭게 일어나 새벽운동을 나갔다. 민서를 보면서 무리하지 말고 해라고 말하면 민서는 내가 하고 싶기 때문에 하는거야라며 대답했다. 기특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학교에서 연습게임을 보면 항상 기록지를 보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운동하는 민서한테 도움을 주기 위해 2014 서울시농구협회 심판강습회를 듣고 3급 심판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었고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20149월부터 ’18기 신임심판교실을 수강했다. 심판교실의 지도강사가 딸의 경기 때 심판을 봤었던 강사였다.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신임심판교실은 9월부터 12월까지 매주 주말마다 교육을 받았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수료할 수 있었다. 이후 농구를 보는 시야가 확실히 달라졌다. 딸이랑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져서 좋았다.

 

딸에게 걱정스러운 것 하나는 성적이었다. ‘머리가 나쁘면 운동을 못 한다고 생각해 아이에게 공부를 꼭 놓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나중에 농구선수가 안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있었다. 아이는 학원 하나 안 다니고 운동 후 집에서 수업내용을 복습하고 문제집을 풀면서 나름 성적을 중위권으로 유지했다.

농구와 공부만 반복하는 민서에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함께 영화를 보곤 했다. 마침 신임심판교실의 인연으로 집에서 가까운 고양 오리온 농구단에서 일하는 동생이 있어 평일 밤이나 주말에는 민서랑 같이 고양체육관에 가서 무료로 고양 오리온 농구경기를 봤다. “디펜스!” 민서가 환하게 웃으면서 크게 외친다. 항상 잘해준 것 없는 엄마로서 미안했는데 민서의 웃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좋던지···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딸도 내색하지는 않지만 많이 힘들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소소한 기쁨을 앞으로 자주 줘야겠다 싶었다.

 

4쿼터 선일여중의 반격이 매서웠다. 어느덧 경기 종료 1분여 전, 42-42. 선일여중의 공격이다. 뒤에 있는 같은 학교 학부모들의 함성이 가득하다. 민서가 팝-아웃(스크린을 걸고 외곽으로 나오는 기술)을 하면서 볼을 잡는다. 상대 수비수가 약간 떨어져 있다. 지체없이 슛을 던진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면서 볼이 링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전율이 돋는다. 모두가 민서를 향해 환호한다. 상대 선수들은 허탈해한다. 바로 공격해오는 숭의여중의 슛이 실패하자 수비 리바운드까지 잡는다. 그대로 경기 종료. 민서의 결승 3점슛으로 45-42, 선일여중의 우승이다. 민서가 동료들과 어깨동무하며 환호하며 눈물을 흘린다. 점점 앞의 시야가 번져 보인다. 뺨에는 물줄기가 흐른다.

 

혹여나 민서가 본인이 농구를 그만하겠다 하면 그만두게 할 것이다. 본인이 하고 싶어서 농구를 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의지로 농구선수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하고 싶어야 힘든 것을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억지로 시킨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은 자기 몸을 움직여서 참고 해야 하는데 억지로 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해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농구를 시킬까 고민 중인 학부모들에게 도움을 주자면, 아이가 여러 가지 운동을 접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민서도 수영으로 시작해 육상을 하다 농구라는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었다. 아이가 여러 가지 운동을 접해보고 자기한테 맞는 것을 찾는 게 중요하다.

 

10년 후 민서의 모습을 흡족하게 상상해 본다. 운동을 계속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 모습으로 웃고 있는 민서를 그려 본다.

 

민서의 땀과 노력을 엄마는 믿고 있다.